작성자 송재호
작성일 2010년 4월 20일
수정일 2010년 4월 21일
연락처 070 7893 1741
이메일 thruthesky@gmail.com
스카이프 thruthesky
홈페이지 http://philgo.com
제가 전화 화상 영어 사업을 하면서 경험한 것들에 대해서 글을 써 볼 까 합니다.
여러 편으로 나누어 쓰면 관리하기가 어려울 수 있으니 장문이 되더라도 조금씩 업데이트를 하며 천천히 써 볼 까 합니다.
저는 특별합니다.
1973년 저는 그렇게 좀 틀리게 생성이 된 것 같습니다.
1991 년도 부터 저는 달라지기 시작 했습니다.
여차 저차 해서 2000년도에는 사업을 크게 벌렸는데, 일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개인적인 인간 관계의 문제로 인해서 삶의 의미를 잃어 버려서 속세를 등지고 은둔 생활을 시작 했습니다.
(서울서 생활하다가 저희 고향 집이 절이라 그냥 절로 들어갔습니다. )
2006 년
6년간 리니지1,2를 했었습니다. 인간 관계에서 문제가 생긴 제게 리니지는 저에게 정말 좋은 치료약이었습니다. 먹지도 자지도 않고 그렇게 6년을 게임을 하고 지냈습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게임도 더 이상 치료에 큰 도움이 안되었습니다. 그래서 2006 년 말 게임을 그만 두었습니다.
게임 그만 두고 나니 몸이 엄청 망가졌었습니다. 심적인 상처는 아물었을지 몰라도 육체적으로는 엄청나게 돈이 들어가야 했었습니다.
대충 계산을 해 보니 2006 년 말 부터 2007 년 초 까지 3천만원 정도를 육체적인 치료를 하는데 쓴 것 같습니다.
전형적인 폐인이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키 174 cm 에 몸무게가 48Kg 밖에 안되었으니 뼈만 남은 거죠. 2010 지금 현재는 약 76 Kg 입니다.
부모님이 다 알아서 해 주셨죠.
2007 년
제 전공은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IT 및 인터넷 컴퓨팅 분야)입니다.
그래서 다시 전공을 한번 살려볼까 하고 여러 가지 신 개념의 소프트웨어를 개발을 하고 사업 기반을 닦기 위한 준비를 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SiteAPI 가 있습니다.
윈도우즈 응용 프로그램 및 홈페이지 운영 도구 등을 개발하고 한참 분주하게 일을 하는 데,
어느 날 눈을 떠 보니 잘 안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내 시력은 돌아왔는데, 안구건조증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래서 IT 쪽은 접었습니다.
제 전공은 IT 가 맞지만 그리고 누구보다 뛰어나지만 저는 저 자신을 제 전공에 가두고 싶은 마음이 없었습니다.
새 인생, 새 출발을 위해서 새로운 것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또 여차 저차 하다 보니 영어 사업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전공이 영어 인지라, … ( 저는 대학을 영어 졸업했으며, 그리고 전산통계학으로 졸업을 했으며, 또 식품영양학으로 졸업을 했습니다. )
영어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컴퓨터를 할 때도 늘 영어를 사용해 왔구요.
인터넷으로 검색 했죠. 영어 사업에 대해서.
전화 화상 영어라는 글이 눈에 띄더라구요. 스카이프라는 프로그램을 수업을 하는 데, 곧 바로 스카이프 설치하고 무료 체험 수업을 해 봤죠.
필리핀 선생님과 수업을 했는데, 선생님도 좋고, 음질도 좋고, 모든 것이 괜찮더라구요. 아주 좋더라구요. 그래서 선생님을 만나러 필리핀으로 갔죠.
2007 년 6 월 필리핀으로 가다.
해외 여행이 처음이라 2 달 일정의 영어 연수 학원을 통해서 필리핀 세부로 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여행을 하며 필리핀에 대해서 배웠으며 모두가 다 영어를 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어 강의를 할 수 있는 수준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필리핀 세부에서 많은 여행을 했습니다.
혼자서 다니기도 했고 또 무리를 지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한국에서 온라인으로 수업한 선생님을 타크로반 시티로 직접 가서 만났으며 그리고 필리핀에서 사업을 해야 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2007 년 7 월 20 일 witheng.com 도메인 등록
온라인 사업은 인터넷 도메인이 중요한 편입니다. “영어와 함께”라는 의미로 with + english 합성어인 witheng.com 으로 도메인을 선택했습니다.
2007 년 8 월 온라인 영어 회사 설립
두 달간의 필리핀 시장 조사를 끝내고 전화 화상 영어 회사 “온라인영어”를 설립하였습니다.
“가르친다는 것은 이윤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이념을 세우고 모든 학생들이 부담 없이 수업을 받을 수 있도록 수업료를 아주 많이 낮추고 학생들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사업을 부가세면세로 해야 했습니다.
부가세면세를 받기 위해서는 교육을 하는 업체라는 것을 증명 해야 했으며 교육청의 인가가 필요 했습니다. 집에서 교육을 하는 것으로 교육청에서 허가를 받으려 하니, 주거 지역의 주변 이웃의 동의서가 필요 하다고 했습니다.
비교적 만만치 않은 과정을 거쳐 교육청으로 부터 허가를 받았으며, 사업자등록 증에 종목 추가를 온라인 강의로 했습니다.
그리고 통신판매업을 신고했습니다.
이러한 업무를 모두 진행 하는데 며칠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2007 년 9 월 100% 자유 예약 시스템 개발 착수
대부분의 경우 한달 단위로 수업을 예약합니다. 그리고 예약과 취소를 하기 위해서는 홈페이지 운영자와 상담을 해야 하구요.
저는 사업을 혼자 하는 1인 기업을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주 많은 학생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 할 계획이었습니다.
따라서 학생과 일일히 상담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유 예약 시스템을 만든 것입니다.
학생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선생님과 원하는 수업료로 수업을 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 개발을 해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생은 정해진 수강료를 내는 데, 반대로 학생이 수강료를 직접 정하는 시스템이 필요 했습니다.
수강료 뿐만 아니라 선생님, 수업 시간 등을 학생이 마음 데로 정하고 수업과 취소를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http://witheng.com 홈페이지입니다.
2007 년 10 월 동업자 물색
저는 1인 기업으로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리고 이런 일을 같이 해 나갈 사람이 있었으면 하고 동업자를 물색했습니다.
동업자로서 서로 투자를 해야 할 금액은 300 만원 미만으로 적은 편에 속했습니다.
2007년 그리고 2008년 초, 두 명의 투자 및 동업 대상이 있었지만 300 만원이라는 금액은 선뜻 내놓기가 쉽지 않은 금액이었습니다.
정말 많은 기간 대화를 하고 또 여러 차례 만나서 회의를 했지만 그리고 서로 마음도 맞았지만 투자라는 부분에 있어서는 금액이 적든 많든 쉽지가 않았습니다.
결국은 혼자서 일을 처리 해야 했습니다.
동생들로 부터 5백~6백만원 정도 빌렸습니다.
2007 년 10 월 오픈을 했는데, 선생님들이 사라지다.
홈페이지가 완료되어 사업을 개시 했습니다.
수업을 위해서 7 명의 선생님을 온라인상으로 고용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수업을 시작하기로 한 날에 6 명의 선생님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홈페이지를 닫아야만 했습니다.
2007 년 11 월 선생님을 구하러 필리핀으로 가다
회사 설립과 홈페이지 및 시스템 개발이 완료되었습니다.
사업을 할 준비가 되었는데, 영어 강사가 없습니다.
그래서 필리핀으로 가야 했습니다.
첫달은 파라냐케 BF 홈즈에 있는 하숙집을 이용했으며, 너무 비싼데 비해 시설이 너무 안 좋아서 퀘존으로 옮겼습니다.
퀘존으로 옮긴 곳은 훨씬 낳았습니다.
항공권을 1년 오픈으로 끊고, 노트북을 하나 사고, 몇 달 정도 하숙집 경비를 대고, 이것 저것 하고 나니 통장에 남은 돈이 50 만원입니다.
2008 년 2 월 온튜의 탄생
재택 근무 선생님 모집과 관리가 참 만만치 않았습니다.
정말 자본 없이 시작하려니 여러 가지로 몸이 힘들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선생님과 학생이 서로 수업을 예약하고 진행 하게 할 수 없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으며 그것은 “글로벌 매칭 시스템” 형식으로 이어졌습니다.
http://ontue.com 이라는 사이트를 만들었으며, 강의를 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홈페이지에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등록을 하도록 하였습니다.
국가나 인종에 관계 없이 영어를 가르치던, 불어를 가르치던, 음악을 가르치던, 요리를 가르치던 상관없이 가르치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선생이 될 수 있었으며,
배우고 싶은 사람은 누구든지 등록을 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2008 년 3 월 수업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음
선생님이 많아 졌고 학생도 한 둘 수업을 신청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도 없는 상태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기다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은 자신의 일을 하거나 찾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다 학생이 수업을 예약하면 선생님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수업에 빠지게 됩니다.
학생이 수업을 예약하고 수업 시간에 기다리는 데 선생님이 결강을 합니다.
학생은 자신의 바쁜 시간을 쪼개어 수업을 예약했는데, 선생님이 결강하는 것에 대해서 실망을 하고 떠납니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이러한 일이 계속 반복되었습니다.
2008 년 4 월 학생 유치를 위한 노력
무엇 보다 학생의 수가 많아져야지 선생님들이 안정적으로 수업을 진행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3 백명이나 되는데 학생은 10명도 안되었으며 수업이 연속으로 진행되지 않아서 선생님의 수당이 적었습니다.
따라서 학생을 모집하기 위한 노력이 따라야 했습니다.
우선 간단한 대량 메일 광고나 카페의 쪽지, 지식iN, 게시판 등등 노동력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그렇게 쉽게 광고를 해서 효과를 볼 수 있다면 전 세계에서 망하는 회사는 없을 것 입니다. 모두 성공할 것 입니다.
그래서 기술을 좀 넣었습니다.
마케팅 프로그램을 개발 했습니다. 자동으로 카페에 글을 쓰거나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 로봇을 개발 했습니다. 허사였습니다.
블로그 트랙백을 발송하는 로봇을 개발 했습니다. 역시 허사였습니다.
더 이상 허송 세월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광고에 대한 연구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구글과 오버추어 키워드 광고에 대해서 연구를 했으며 적은 금액으로 광고를 하였습니다.
효과가 있었습니다.
한달 내내 노동을 들이고 그리고 개발을 하고 해서 모든 것이 허사였는데, 간단하게 적은 금액으로 광고를 했는데 방문자가 늘고 회원 가입이 이루어지고 실 구매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2008 년 5 월 카드론 대출을 하다.
더 이상 필리핀에 머물 자금이 없어서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키워드 광고를 진행하기 위해서 자본이 필요 했습니다.
국민은행 신용 카드로 600 백 만원을 대출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광고비를 늘리며 온라인 키워드 광고를 진행했습니다.
광고비를 쓰는 만큼 매출이 크게 늘어나기 시작 했습니다.
2008 년 5 월 전자결재 연동을 하다.
회원 가입이 늘고 무료 체험 수업 진행도 늘어만 가는데 결재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어렴풋이 이러한 문제가 전자결재 연동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 판단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인의 80% 가 전자결재를 통해서 결재를 하고 그 중 30% 이상은 전자결재가 아니면 아예 결재를 하지를 않습니다.
망설임 없이 전자 결재 연동을 하였으며 결과는 만족할 만한 성공이었습니다.
2008 년 5 월 프랜차이즈 사업을 위한 위세너 회사 설립
이전에도 마찬가지 였지만 저는 1 인 기업이었습니다. 혼자서 해야 할 일은 많은 데 모든 것을 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룹을 만들어야 했으며 그것이 프랜차이즈 사업이었습니다.
----- To Be Continued -----
2008 년 5월 프랜차이즈 사업을 위한 위세너 회사 등록
2008 년 6 월 재택 근무 강사의 결강률이 높아 결강을 낮추는 프로그램을 개발
2008 년 6 월 프랜차이즈 사업 활성화